발달장애인 예술가를 위한 두 개의 '예술세계': 전문성인가, 관계성인가?
발달장애인 시각예술가와 지원인력의 협력 관행을 하워드 베커의 '예술세계' 이론으로 분석한 논문을 소개한다.
"이것도 노동인가?" 질문하는 서울의 중심에서, 문화예술 활동이 노동의 권리와 연결되는 과정을 담다
ONG!: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명희: 2010년부터 노들야학 상근 활동가로 일했어요. 2020년부터 2024년까지는 전장연 활동가로 파견됐다가, 최근 다시 노들야학으로 복귀했습니다.
ONG!: 활동가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명희: 학교 다닐 때 학생 운동을 했고, 야학에 오기 전에는 중증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했어요. 2007~2008년 활동 지원 서비스 시범 사업 때는 하루 3시간밖에 지원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시설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한 용기 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일본의 푸른잔디회의 운동에서 “장애인의 몸은 자본주의 사회를 철저하게 배척하는 몸”이라고 선언한 것처럼, 드러나는 몸으로 차별을 도로 위에서 전면적으로 투쟁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그 옆에서 함께하고 싶었죠.
야학은 전장연이나 다른 단체들과 달리 학생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에요. 피로도가 높지만, 누군가의 삶을 긴밀하게 볼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의미 있어요. 지금까지 만난 단체 중 가장 재미있는 곳입니다.
ONG!: 비장애인 활동가로서 고민은 없으셨나요?
명희: 장애인 운동에서 비장애인 활동가는 “독자는 두 번째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신체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운동의 전면에 있지,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상징으로 생각하지는 못하잖아요.
장애와 비장애의 영역도 다양한 정체성이 있어요. 전장연에서 요구하는 장애 등록제 폐지 이슈를 보면, “차이”라는 개념이 달라지게 정의될 수 있겠더라고요. 비장애인이라고 해도 사회적 장애와 차별을 함께 감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ONG!: 활동 의제 중 노동권에 특히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명희: 장애인 노동권이 급부상한 지 오래되지 않았어요. 전장연 하면 2001년부터 외쳐온 이동권이 주요했잖아요. 이동권, 활동 보조 서비스, 탈시설을 거쳐 지금 노동권이 가장 따끈따끈한 이슈예요.
노동은 자립한 중증 장애인의 삶을 단번에 변화시킬 수 있어요. 일상의 여백을 채우는 것들이 자립생활에 중요한데, 그걸 한 방에 해결하는 게 노동이라는 개념이에요. “나도 일을 한다”는 게 개인이 가지는 소중한 가치죠.
ONG!: 공공일자리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명희: 권리 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가 서울에서 2020년 시범 사업으로 시작됐는데, 그 모델이 된 건 2017년 노들야학의 주간반 수업이에요. 노들장애인야학은 1993년 개교 이후 저녁 수업만 했어요. ‘야(夜)’가 원래 밤 야자였죠.
그런데 2015년부터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필요했어요. 이분들이 아침 8~9시에 야학에 나와서 밤 9시까지 계시는데, 낮에는 텅 빈 휴게실에만 있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래서 2017년 서울시 프로젝트로 주간반을 시작했어요. 연 2천만 원으로 시작한 낮 수업이었죠.몸을 움직이는 문화예술 수업들을 시도했고, 에스쁘아라는 아프리카 댄스 수업 같은 것들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면서 야학의 ‘야(野)’도 들 야자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ONG!: 처음부터 ‘일자리’ 개념이었나요?
명희: 아니요. 처음엔 개인의 삶에 여백을 채우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문화예술 활동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으로서의 고민도 함께 진행됐어요. “우리도 일할 수 있다”는 자각이 생긴 거죠.
ONG!: 여가 활동처럼 여겨지던 문화예술 활동이 어떻게 노동의 권리와 연결됐나요?
명희: 정책적 배경을 봐야 해요. 최중증 장애인의 고용률이 가장 낮고 실업률은 가장 높아요. 장애인은 아직도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이고, 기업들은 고용 장려금을 줘도 고용하지 않죠.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월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야 해요.
그런데 이들에게도 욕구와 활동력이 있고,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노동할 공간이 없었던 거예요.
ONG!: 그렇다면 노동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답이 왜 문화예술 활동이었나요?
명희: 시립 오케스트라를 생각해보세요. 연습하고 공연하고 돈을 받잖아요. 그런 모델을 참고했어요. 문화예술팀, 인권 교육, 권익 옹호 활동 같은 여러 모델을 검토했죠.
지금 권익 옹호 활동을 하는 분들도 일자리로 일하고 있고, 아프리카 댄스 팀이나 쿵쿵 차카차카팀도 문화예술 일자리로 활동하고 있어요.
ONG!: 오케스트라가 연습하고 공연해서 돈 받듯이, 쿵쿵 차카차카팀도 연습하고 공연해서 돈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거네요?
명희: 그렇죠. 그런데 단순히 돈이 필요했다면 생계급여를 높이면 됐을 거예요. 노동의 영역으로 명확하게 한 이유는, 일을 한다는 것이 관계를 쌓는 거이기도 하니까요.
ONG!: 문화예술 활동을 배우는 것 자체가 어떤 지점에서 노동이 될 수 있나요?
명희: 비장애인도 마찬가지잖아요. 일상적으로 누군가와 관계 맺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배워나가는 것도 노동의 중요한 개념이에요. 야학에 계신 학생분들이 자신들의 동료로서 인식하고 같이 일하는 과정이 더 중요했어요. 그래서 문화예술을 통한 자립생활의 핵심 키워드로 노동이 들어온 거예요.
ONG!: 복지의 확장과 노동의 권리는 어떻게 다른가요?
명희: 노들야학은 30년 넘게 중증 장애인들을 지역사회로 유입하는 것을 교육권 투쟁의 주요 슬로건으로 삼았어요.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낮에 노동하고 함께 관계 맺을 공간이 필요했어요. 단순히 급여를 받는 것도 소중하지만, 일상적으로 누군가와 관계 맺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배우는 것, 그것도 노동의 중요한 개념입니다.
ONG!: 장애인들이 표준 사업장이나 보호 사업장에서 생산품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일을 하면 되지, 왜 문화예술 활동이 노동이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요.
명희: 보호작업장은 대부분 최저임금 적용 제외 공간이에요. 하루 8시간씩 한 달에 40시간 이상 일해도 10만 원 이상 받기 어려워요.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한계예요.
중요한 건 이 사람들의 노동을 어떤 가치로 볼 것인가예요. 이 가치는 기존 사회 질서에서는 작동하지 않아요. 그래서 새로운 구조와 판을 만들 필요가 있었던 거죠. 그게 권리 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예요.
ONG!: 새로운 판을 만든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명희: 공공일자리 면접에서는 중증 장애인일수록 가산점을 줘요. 사회에서는 장애 정도가 심할수록 취업을 안 시키잖아요. 완전히 반대예요.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는 단순 생산직 노동이 아니라 노동 개념을 확장하는 거예요. “그것도 노동이냐”고 묻는 사람에게 “이것도 노동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ONG!: 현재 맞춤형 공공일자리에서의 산출물이 ‘권리’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권리를 생산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명희: 중증 장애인의 노동은 기존 사회에서 충분히 배제됐었어요. 차별적 맥락이 있었던 거죠. 이제 장애인 공공일자리라는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을 선언하고, 국가가 급여 형태로 활동비를 제공하는 거예요.
이건 개인이나 기업의 책임이 아니에요. 국가가 이들의 노동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그 가치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선언적이에요.
서울시에서 2024년 전원 해고가 됐을 때도 사람들이 잘 몰랐잖아요. 대규모 해고 사태는 뉴스에 나오는데 말이죠. 2024년 말 장애인 권리 중심 맞춤형 특별법 제정이 안정적으로 확인된다면, 활동 지원 서비스나 교육처럼 국가 의무로 보장받았던 것처럼, 중증 장애인의 노동도 나라가 예산으로 인정하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ONG!: 복지관은 복지 체계 안에 있고, 야학은 그 바깥에 있잖아요. 산출물이 사회에 갖는 의미가 다를 것 같은데요.
명희: 가장 중요한 건 탈시설과 마찬가지로 중증 장애인의 노동이라는 존재 자체를 사회에 드러냈다는 거예요. 누구도 관심 없었던 이들이 이동권 현안으로 출근길 지하철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잖아요. 노동도 마찬가지예요. 더 많은 장애인이 사회에 등장해야 해요.
대학로 노들야학이 비싼 임대료를 내며 종로구 한복판에 있는 이유가 그거예요. 학교가 먼 시설이나 산속 골짜기에 있는 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들이 유입하기 좋은 지역 한복판에 있어야 하니까요. 존재를 드러내는 것, 누구한테 인정받기 위한 게 아니라 존재 자체의 선언으로서요.
이들이 즐겁게 살아가는 것을 공연이나 문화예술 활동으로 발휘하는 게 개인 삶의 가치에도 큰 영향을 줘요. 어디 구석에 처박아 놓고 보이지 않게 하는 게 시설 수용 정책의 의도였잖아요.
ONG!: 쿵쿵 차카차카 팀의 공연이나 다른 야학 수업에서 만들어진 그림 작품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예술 작품이 아니라 ‘중증장애인도 일한다’는 선언 자체가 산출물인 거네요?
명희: 맞아요.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들과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지역사회에서 관계를 쌓아갈 수 있는 중요한 매개가 노동이 된 거고, 그게 제일 컸어요.
ONG!: 지금 공공일자리 사업은 어떤 상황인가요?
명희: 서울은 전부 해고됐어요. 오세훈 서울시장이 2년 전 사업을 중지시켰죠. 노들야학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전북, 전남, 경기도 같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진행 중이에요. 서울이 먼저 시작했는데 없어진 거죠.
탈시설도 중앙정부 법 체계보다는 각 지자체에서 투쟁으로 격파하는 경우가 많아요. 장애인 평생교육법처럼 권리 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 특별법이 제정돼야 해요. 시장이 바뀔 때마다 일자리가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건 너무 혼란스럽잖아요.
ONG!: 지난 일요일에 장애인 평생교육법이 통과되었어요! 장애인 평생교육법 통과 이후 실질적 변화는 언제쯤 가능할까요?
명희: 법이 2025년 10월에 통과됐는데, 시행 유예기간이 있어서 실효는 2027년 5월 정도예요. 그 사이에 조례도 만들고 전달 체계도 정비하죠.
노들야학은 독특한 케이스예요.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거리에 나가 싸워서 예산을 받아냈거든요. 서울시 교육청이나 시청에서도 어려워해요. 보통은 제도가 먼저 있고 예산을 반영하는데, 투쟁으로 만드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요.이제 법이 만들어졌으니 역순으로 끼워 맞춰야 해요. 2027년까지 정부 예산을 명확한 근거로 받을 수 있도록 정비하는 게 중요해요.
ONG!: 활동가로서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신다고 생각하세요?
명희: 우리의 언어를 개발한다고 생각해요. “권리 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가 대체 무슨 일자리예요? 말도 되게 길잖아요.
근데 이 언어를 개발하고 선언하면, 그걸 실제 지역사회에서 정착시켜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알아가도록요.장애인이 대학로에 많이 나타났다, 그러면 이들이 어떤 활동을 할 건지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법이 바뀌어도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으면 사장되잖아요. 그 실천하는 공간의 주요 등장 인물이 노들야학 학생분들이에요. 노동자 분들이고요. 이들이 실제 어떻게 일하고 노동하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당사자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