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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펼쳐낸 예술노동의 꿈, <발달장애인 독립공간 예술쉼터>

14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발달장애인의 예술노동 터를 가꾼 서천군 예술 쉼터의 이야기

창문에 진주로 예술 쉼터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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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ONG! 2호 주제는 예술노동권입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예술 활동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술 활동은 말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예술 활동은 누군가에게는 일자리이기도 합니다. 최근 수 년간 국내에서도 작품 판매, 디자인 상품, 공연 등 발달장애인의 예술 활동을 일자리로 연결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동시에 예술 활동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발달장애 당사자의 좋은 삶을 향해야 하고 ‘일자리’라는 양적인 목표 이전에 어떤 것이 발달장애 당사자에게 좋은 예술 활동과 일자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죠. ONG! 에서는 지역에서, 현장에서 이런 질문과 고민을 진지하게 마주하며 실천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단체와 인물을 찾아 인터뷰 했습니다.

첫 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2011년부터 충남 서천군에서 활동을 “발달장애인 독립공간 예술쉼터(이하 예술쉼터)”의 대표 김인규 작가입니다. 현재 예술쉼터에는 20여명의 성인 발달장애인 분들이 미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천군종합교육센터의 한 공간을 창작스튜디오로서 사용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하루 동안 센터에서 관찰하며 발견한 독특한 점은 예술쉼터의 활동이 강사와 시작 시간과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수업, 프로그램 방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물론 곁에서 보조하는 지원자들은 존재합니다). 누구의 지도 없이도 아침 일찍 모여든 발달장애인 참여자들은 익숙한 일상처럼 수납장에서 재료를 꺼내고 종이를 자신의 자리에 펼쳐 자신의 창작 활동을 이어갑니다. 김인규 대표에 따르면 이런 ‘일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여러 도전과 실패, 그리고 계속되는 도전 끝에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예술쉼터의 시작과 철학 : 똑같이 가르치기보다 고유함을 찾도록 돕기
2013년 부모회 미술 활동 당시 전시

 예술쉼터의 시작은 2011년 즈음 충남장애인부모회에서 미술 교사였던 김인규 작가가 자신의 발달장애인 아들, 그리고 주변 다른 발달장애청년들과 미술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처음 다른 장애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김 작가도 미술 활동을 하며 기대한 것은 다른 비장애인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년 남짓 하며 이런 기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내가 뭔가를 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니, 너무 예쁘고 놀라운 그림들이 나왔어요. 이것이 이 친구들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개성이자, 비장애인들은 표현할 수 없는 세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첫 번째 운영 철학, ‘가르치기보다 지켜본다’라는 분명한 방향성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철학은 종종 다른 발달장애인 자녀의 부모님들과 충돌을 빚기도 합니다. 단체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을 오히려 “못난 장애의 흔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장애예술단체의 전시를 다녀와서 “왜 우리 애들한테는 (사실적으로) 잘 그리게 하지 않나요?”라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협동조합 설립 : 지속적인 소득 만들기의 시도와 좌절
2016년 전시에 설치 된 도자타일

이런 주변의 반응과 달리 첫 전시에서 단체의 모든 작품이 완판되는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창작물을 생산하는 발달장애인 창작자들을 보며 김 작가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전시에서는 몇 작품 걸지 못하고 보관하기도 어렵고 고민하다가 떠올린게 도자 타일이었어요. 생산하는 대로 쌓아놓을 수도 있고 건축에 넣으면 판매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죠.” 그리고 이 도자타일이 하나둘씩 판매가 되기 시작하고, 마침 충남교육청에서 특수학교를 신설하면서 1천 장 구매 제안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계기로 김인규 대표는 이를 계기로 발달장애인 자녀들이 그림을 그리며 지속적인 수익을 나누며 살아가는 꿈을 갖고 부모들을 설득해 서천발달장애인미술창작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3년 뒤 폐업 선언을 하게 됩니다. 

협동조합을 만들었을 당시 김 작가의 목표는 고등학교 이후 발달장애인 자녀들이 지속적으로 예술 활동을 통해 생산을 하고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미래에 다른 부모님들은 장애당사자의 일자리 만들기에 진심 어린 관심과 참여가 없었고 자신이 개인사업체의 사장의 역할이 되어 모든 것을 꾸려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단체의 대표들이 이 상황에서 자신을 갈아서라도 사업을 이어가고 결국 번아웃을 겪곤 합니다. 그러나 이 때 김 작가는 멈춤을 선택했습니다. “나도 내 삶이 있는데 여기서 더 이상 가면 안된다 싶었죠.” 이는 좋은 뜻을 위해서 누구도, 대표인 김 작가 본인 조차도 일방적으로 희생하지 않는다는 예술쉼터의 두 번째 철학입니다. 

프로그램이 아닌 일상으로, 참여자에서 주인으로
2022년 복지관 활동 당시

김인규 대표는 이후 발달장애인과의 미술활동을 부모회와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됩니다. 그리고 2020년 서천군장애인종합복지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3년간 활동하던 시기를 거쳐, 자신의 작업실을 단체의 작업실로 내어주며 지금의 예술쉼터 형태가 자리 잡게 됩니다. "복지관을 이용할 때는 늘 저희가 재료를 꺼내주고 끝나면 치워야 하는, 말하자면 프로그램 수혜자 같은 기본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공간을 발달장애 당사자에게 오픈하자 정해져 있는 시간이 있기보다 때 되면 각자 자율적으로 와서 그림을 그리고 머물다가 가는 일상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여기 오니 그 (프로그램 제공자-수혜자라는) 구조가 사라진 거죠."   

이렇게 발달장애 당사자들이 “프로그램 참여자”에서 “공간의 주인”으로 정체성이 자리 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운영의 규칙도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오고 싶을 때 자율적으로 왔다 가고, 회비를 걷고, 매 년 활동 방향에 대해서 회의를 하고 자신의 재료를 준비하고 정리합니다. 

예술쉼터의 공동작업실로 운영되었던 김인규 작가의 작업실

"회비를 걷기 시작한 것도 제 개인 공간으로 오면서부터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프로그램 수혜자가 아니라 이 공간의 주인이다. 내가 공간은 무상으로 제공하지만, 필요한 기본 물품은 우리 돈으로 사야 한다'고 선언했죠."

지자체와의 협업과 공공건물에 자리잡기
2023년 서천군 청사에 설치 된 도자타일 작품 

동시에 김인규 대표는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지자체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립니다. 매 년 전시를 열고 이 자리에 군수와 의원을 초대해서 지자체가 활동과 공간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청을 했습니다. "전시회 때마다 군수님과 의원님들께 '지자체가 맡아야 할 일을 개인이 하고 있다'고 3년 내내 떠들었거든요. 이런 활동을 지자체가 끌어안아야 한다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 결과, 예술 쉼터는 서천군이 ‘장애인 평생학습 도시’로 선정되면서 서천군 종합교육센터의 한 공간을 스튜디오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술쉼터가 직접 소유한 공간은 아니지만, 기한의 정함 없이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인 스튜디오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만을 위한 전용 건물이 아닌 공공 건물에 발달장애인 회원이 지속적으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인식 개선의 효과로도 이어집니다. 김인규 대표는 이것을 잘 보여주는 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그분들은 발달장애인을 상대해 본 적이 없어서 화장실 사용이나 뒤처리 문제로 부딪히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사무실로 찾아가 면담합니다. '청소부 아주머니가 화장실 깨끗이 쓰라고 한마디 하는 순간, 우리 회원들은 통제받는 공간이라 여기고 무서워서 오기 싫어하게 된다', '장애인 평생학습 도시를 선포한 순간, 당신들은 배워나가야 한다'고 하나하나 가르치는 중입니다."

놓지 않은 일자리 창출의 꿈, 그러나 놓지 말아야 하는 핵심가치
예술 쉼터의 새로운 창작 공간이 된 서천군 종합교육센터

이처럼 예술쉼터는 프로그램이 아닌 자생적인 동아리 활동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처음 협동조합을 만들 당시의 일자리 만들기는 완전히 포기한 것일까요? 김인규 대표는 노동과 일자리 창출이 발달장애 당사자에게 갖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또 그는 미술 활동도 생계는 아니더라도 발달장애 당사자를 위한 소득을 만들어내고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함께할 수 있는 동료, 그리고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지역은 동료와 네트워크를 만드는 점에서는  서울보다 불리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의 소도시라는 것은 단지 한계가 아니라 기회이기도 합니다. 김인규 대표는 지자체에 지금도 지속적으로 발달장애인이 전용으로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기를 요청하며 그 곳에서 예술 활동을 이뤄지고 굿즈를 생산하여 판매한다면 그 곳이 서천의 얼굴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와 얘기를 나누며 느낀 예술쉼터의 세 번째 철학은 “일상을 지키기 위해 한계를 설정하기”였습니다. 먼저 자신과 단체와의 건강한 거리감 갖기 위해 노력합니다. 단체에서는 임금을 받지 않고 자신의 활동을 자원봉사로 규정합니다. “(나를) 갈아 넣으면 뭐가 되긴 될 것 같은데, 내 삶을 갈아넣을 수는 없다. 그게 제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야 제가 이 상황을 즐겁게,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지자체의 지원과 동료가 구성되기 전까지 사업을 무리해서 확장하지 않고 사계절 쉼 없이 이어지는, 일상을 지켜내는 동아리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에 집중합니다. 

서천군 종합교육센터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쉼터의 회원

 "활동이 일상화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프로그램의 경우  3월에 시작해서 11월에 끝나고 몇 개월 쉬면 다시 모든게 원점으로 돌아가요. 그래서 일년 내내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해요. 이런 활동에서는 이분들이 자기 방식대로 성장하고, 자신들의 삶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이죠. 직업이나 수익 창출은 2차적인 것이죠.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자신의 삶의 영역,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서잖아요?”

이처럼 예술쉼터는 장애예술에 대한 급속한 관심과 지원과는 거리를 둔 채 자신의 속도로 탄탄히 기반을 다져가고 있습니다. 14년을 꾸준히,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달장애인이 주인공이 되어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일상을 만들어왔습니다. 앞으로도 예술쉼터가 발달장애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시간과 일상을 지키는 공간으로서, 나아가 서천의 예술 거점으로서 발달장애인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일과 노동을 펼치는 장소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예술쉼터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아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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